신증동국여지승람 평안도편의 흥화진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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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주(古靈州) 주의 남쪽 55리에 있다. 본래는 고려의 흥화진(興化鎭)이었는데, 현종 23년에 영주로 승격시켜서 방어사를 두었고, 본조에서는 주를 폐하여 내속시켰다. 토성 터가 있는데, 둘레가 2천 5백 80척이다. ○ 고려 현종 원년에 거란(契丹)의 임금이 스스로 군사를 이끌고 와서 강조(康兆)를 토벌하려고 흥화진을 에워싸매 양규(楊規)가 도순검사(都巡檢使)가 되어 호부 낭중(戶部郎中) 정성(鄭城), 부사(副使) 장작주부(將作主簿) 이수화(李秀和), 판관(判官) 늠희령(廩羲令) 장경(張顥)과 더불어 성에 틀어박혀 굳게 지켰는데, 거란 임금이 거짓으로 강조의 글을 써서 흥화진에 보내어 항복을 권유하거늘 양규가 이르기를, “나는 왕명(王命)을 받고 왔지, 강조의 명을 받지 않았다.” 하며, 항복하지 않았다. 뒤에 거란의 소손녕(蕭遜寧)이 내침(來侵)하매 강감찬(姜邯贊)으로 서북면 행영도통사(西北面行營都統使)를 삼고 대장군(大將軍) 강민첨(姜民瞻)으로 부장(副將)을 삼았다. 군사 20만 8천 명을 거느리고 영주(寧州)에 주둔하고, 흥화진에 가서 선기병(選騎兵) 1만 2천 명을 산골짜기 가운데에 매복시키고, 큰 밧줄로 소가죽을 꿰어서 성의 동쪽에 있는 큰 강을 막고 기다렸다가, 적이 이르자 막은 것을 트고 복병을 일으켜서 크게 패배시켰다.
古靈州。在州南五十五里。本高麗興化鎭。顯宗二十三年,陞靈州,置防禦使。本朝廢州來屬。有土城基,周一萬二千五百八十尺。○高麗顯宗元年,契丹主自將來,討康兆,圍興化鎭。楊規爲都巡檢使,與戶部郞中鄭成、副使ㆍ將作主簿李守和、判官ㆍ廩羲令張顥嬰城固守。契丹主詐爲兆書,遺興化鎭諭降,楊規曰:“我受王命而來,非受兆命。” 不降。後,契丹蕭遜寧來侵,以姜邯贊爲西北面行營都統使,大將軍姜民瞻副之,帥兵二十萬八千人,屯寧州。至興化鎭,選騎兵萬二千,伏山谷中,以大繩貫牛皮,塞城東大川以待之。賊至,決塞發伏,大敗之。]_신증동국여지승람 평안도편의 흥화진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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